여러 번 벼르다가 다녀온 전시인데 입구에서부터 압도되는 느낌이 있어서 그 인상부터 풀어보려 한다
입구-첫만남
전시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스크린 하나가 정면을 가득 채운다
소년과 소녀가 구름 위를 걷듯 지붕을 밟고 있는 장면 그 위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적란운이 화면 전체를 채운다 "여름을 닮은 우리"라는 타이틀이 구름 사이로 떠 있는 구도였다
사진으로만 보던 성률의 그림이 이렇게 큰 스케일로 펼쳐지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원래 수채화는 손바닥만한 종이 위에서 완성되는 매체인데 이걸 벽면 크기로 키워도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입장하면서 받은 티켓도 같은 이미지였다 하단에 작은 글씨로 "Seongryul / Summer in Us"라고 영문 제목이 병기되어 있었다 티켓 자체도 빳빳한 무광 종이 질감이라 소장하고 싶어지는 디자인이었다
전시장 입구 — 작가 소개 공간
전시장 입구 — 작가 소개 공간
본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회색 콘크리트 톤으로 마감된 곡선형 복도였다 벽 위로는 조명 받은 조형 식물이 늘어져 있고 바닥에는 그 그림자가 자연스럽게 깔린다
여기서 작가 소개 텍스트를 만났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성률은 맑고 투명한 색채와 섬세한 묘사로 풍경 속의 작지만 따스한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다 유독 사라졌거나 언젠가 사라질 공간에 마음이 끌린다고 말하며 오래된 아파트 단지, 친구들과 뛰놀던 골목, 그 풍경 속에 자리한 소년과 소녀를 그린다 이 서정적인 시선이 보는 이의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리며 희미해진 기억을 선명하게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흥미로웠던 건 숫자였다 SNS상에서 전 세계 60만 팔로워를 모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졸업작품이었던 그래픽노블 『여름 안에서』로 2022년 일본국제만화상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내용 이후 배제민, 이하이 등 뮤지션의 앨범 아트워크와 유니클로, 에르메스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이 좋았다 성률에게 그림은 서로를 기억하고 보살피는 기록이라는 문장 이번 전시는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지나 회화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작가가 다른 성장의 시작점에서 건네는 인사라고 마무리되어 있었다
작가 소개 옆 벽면에는 "여름을 닮은 우리"라는 전시 제목이 손글씨 느낌의 서체로 새겨져 있고 그 사이로 두 개의 좁은 통로가 나 있어서 마치 골목 사이를 지나가는 듯한 연출이었다
전시 소개 — 텍스트 패널
복도를 지나면 흰 벽에 다음 텍스트가 적혀 있었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할 길 없었던 어느 여름날의 우리를 기억하나요 그때 우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뛰고 땀 흘리고 울고 웃었을까요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따라 작은 것 하나에도 온 마음을 다했던 시절을 만나보세요"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왜 작가가 '기록'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강조했는지 이해가 됐다 이 전시는 거창한 메시지보다는 한 사람의 사적인 여름을 들여다보는 구조였다
QR코드로 영문 설명도 함께 제공되고 있었다
울지마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을 마주했다 공간은 화이트큐브에 가까웠고 군더더기 없이 작품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만드는 배치였다
가장 먼저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무성한 식물들 사이에서 두 아이가 화분에 물을 주는 장면이었다 남자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물뿌리개를 들고 있고 여자아이는 팔을 뻗어 분무기를 쏘고 있다 화분걸이에 매달린 알록달록한 화분들과 그 뒤로 무성한 나뭇잎이 화면을 가득 채워서 마치 정글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힙스터
다음은 「힙스터」라는 제목의 작품 빨간색과 파란색 셀로판이 끼워진 3D 안경을 쓴 소년이 놀이터 그네 앞에 무표정하게 서 있는 그림이다 바닥에 떨어진 빛과 그림자의 패턴이 거의 추상화처럼 복잡하게 표현되어 있었는데 이게 성률 작업의 특징 같았다 빛이 떨어지는 모습 하나하나를 허투루 그리지 않는다는 인상
그다음은 계단에 앉은 두 아이를 그린 큰 사이즈의 작품이었다 앞쪽에는 땀에 젖은 표정의 소녀와 소년이 화분들 사이에 앉아 있고 뒤쪽 문가에는 해골이 그려진 미스핏츠 티셔츠를 입은 또 다른 아이가 서 있다 세 인물의 시선이 제각각이라 한 장면 안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벽돌, 계단, 화분 하나하나의 질감 표현이 정교해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유에프오
골목길 화단 옆에 나란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두 아이를 그린 작품도 좋았다 장미 넝쿨이 우거진 나무 울타리와 주차된 차들이 배경으로 깔리고 두 아이는 등을 맞댄 듯한 구도로 같은 방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지는 그림에 나오지 않는데 그 여백이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했다
반사
큰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의 그림도 인상 깊었다 대야 속에 비친 나뭇가지와 하늘의 반영, 그리고 그 옆에 쪼그려 앉은 인물의 손가락이 화면 위쪽 벽돌을 가리키고 있다 시점 자체가 독특해서 관찰자의 위치를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침 햇살
화단
자동차 두 대 사이로 보이는 골목, 그 사이를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과 같은 골목을 살짝 다른 각도에서 그린 또 다른 그림도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쪼개지는 햇살의 표현이 거의 점묘에 가까울 정도로 세밀했다 이 두 점은 같은 장소를 다른 시간이나 다른 시선으로 포착한 연작처럼 보였다
대만으로 추정되는 거리 풍경 속 두 아이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신난 표정을 짓는 장면도 있었다 오토바이들이 늘어선 골목, 한자 간판, 분홍색 타일 벽 이국적인 색감과 질감이 다른 작품들과는 결이 살짝 달라서 작가가 여행 중 포착한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여름방학
터널 안에서 바깥의 초록빛을 내다보는 구도의 그림도 있었다 이 그림을 배경으로 포토존도 있었는데, 일본 + 여름 감성의 끝판왕이 아닐까 싶었다.
이외에도 많은 그림들이 있었고, 전시회 티켓에도 있었듯이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은 보면서도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전체 인상
전시를 다 보고 나니 성률이라는 작가가 왜 그렇게 '사라질 풍경'에 집착하는지 알 것 같았다
화려한 사건은 없다 아이들이 물을 주고 계단에 앉고 골목을 걷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전부다 근데 그 평범함을 그릴 때 들어가는 디테일의 밀도가 어마어마하다 빛이 잎사귀 사이로 떨어지는 방식, 그림자가 콘크리트 바닥에 흩어지는 모양, 낡은 벽돌의 질감까지
이건 단순히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두려는 절박함 같은 게 느껴지는 작업이었다
(Musées royaux des beaux-arts de Belgique / Musée Oldmasters)
브뤼셀 왕궁 광장 바로 옆, 왕립 구역 한가운데 자리잡은 벨기에 왕립 미술관. 미술관 단지 전체가 올드 마스터스 관, 마그리트 미술관, 세기말 미술관 등 여러 관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세기말, 근현대 미술관은 리노베이션 중이어서 관람하지 못했다. 제임스 앙소르 그림을 보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마그리트 미술관은 다음 편으로 따로 다룰 예정. 안트베르펜 왕립미술관 (KMSKA)에 제임스 앙소르 작품들이 많이 모여있다고 들었는데, 다음에는 꼭 안트베르펜에 가고 싶었다.
벨기에 왕립 미술관 외관
올드 마스터스 관으로 들어가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먼저 나온다. 올라가기 전부터 이 미술관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유럽 회화와 조각을 연대순으로 전시하고 있고, 플랑드르 회화가 컬렉션의 중심축을 이룬다. 플랑드르 프리미티브부터 시작해서 브뤼헐, 루벤스, 반다이크까지 — 교과서에서 이름만 봤던 화가들이 한 건물 안에 다 모여 있다는 게 이 미술관의 가장 큰 강점이다.
2층에서 내려다본 미술관 전경
〈최후의 심판 The Last Judgment〉 15세기, 작가 미상
최후의 심판 The Last Judgment〉 15세기, 작가 미상
작가 미상의 15세기 작품. 사실 종교화는 슬쩍 보고 지나치려 했는데, 이 그림은 오른쪽 아래 지옥도가 발목을 잡았다. 중앙의 심판 장면은 전형적인 구도지만, 지옥 쪽 묘사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기괴하다 — 괴물과 악마들이 죄인들을 끌어당기는 장면이 보쉬의 그림처럼 촘촘하고 어둡다. 작가가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은 채로 걸려 있는데, 이 지옥도 하나만으로도 플랑드르 화풍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The Temptation of Saint Anthony〉 히에로니무스 보쉬, 1520-1530경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The Temptation of Saint Anthony〉 히에로니무스 보쉬, 1520-1530경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가운데 패널 The middle panel of The Temptation of Saint Anthony〉
여기서 보쉬를 만날 줄은 몰랐다. 리스본 국립 고미술관에 원작 트립티크가 있는 걸 알고 있었는데, 명판을 보니 "replica of the original triptych in Lisbon" 이라고 적혀 있었다. 레플리카이긴 하지만 보쉬 특유의 세계관을 직접 눈앞에서 보는 건 다른 얘기다. 그림 곳곳에 숨어 있는 반은 인간, 반은 짐승인 존재들, 불타는 건물들, 알 수 없는 의식들 — 역시 보쉬구나 싶은 장면들이 중간중간 계속 튀어나온다.
〈기부자와 함께 있는 십자가 처형 Crucifixion with a Donor〉 히에로니무스 보쉬, 1480-1485경
기부자와 함께 있는 십자가 처형 Crucifixion with a Donor〉 히에로니무스 보쉬, 1480-1485경
보쉬 그림 두 점이 나란히 걸려 있는 건 꽤 드문 경험이다. 이 작품은 앞서 본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과는 결이 다르다. 괴물도, 지옥의 풍경도 없이 — 십자가에 달린 예수와 기부자의 초상이 담담하게 담겨 있다. 동방박사의 경배나 성모자상과 비슷한 온도다. 기괴한 상상력으로만 보쉬를 알고 있었다면 이 그림이 꽤 낯설 수 있다.
〈카스티야의 펠리페 1세와 후아나 1세의 초상화〉 야코프 판 라템 추정, 1495-1506
<카스티야의 펠리페 1세와 후아나 1세의 초상화〉 야코프 판 라템 추정, 1495-1506
<카스티야의 펠리페 1세와 후아나 1세의 초상화 클로즈업>
원래는 '지에릭제이의 최후의 심판 제단화'의 양쪽 날개 패널이었던 그림. 제단화가 닫혔을 때 바깥에 보이는 면이었으니, 그림이 일종의 문짝이었던 셈이다. 두 인물의 의상과 배경의 식물 묘사가 특히 눈에 띈다 — 잎사귀 하나하나, 꽃의 결까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디이레겜 수도원의 제단화 Triptych of the Dielegem Abbey〉 얀 반 도르니크 (Master of 1518) 추정, 16세기 초
〈디이레겜 수도원의 제단화 Triptych of the Dielegem Abbey〉 얀 반 도르니크 (Master of 1518) 추정, 16세기 초
〈디이레겜 수도원의 제단화 가운대 패널, The mildle panel of Triptych of the Dielegem Abbey>
작가가 'Master of 1518' 혹은 얀 반 도르니크로 추정되는 작품. 이 그림에서 눈이 멈춘 건 건물 묘사 때문이었다. 배경에 등장하는 건축물의 원근감과 디테일이 단순한 배경 처리 수준이 아니다 — 대리석 한 장 한 장, 아치의 곡선까지 꼼꼼하다.
제목은 수도원 제단화이지만, 보는 재미는 뒤편 건축 풍경에 있다.
〈성모와 아기 예수 Virgin and Child〉 쿠엔틴 마시스, 1497
앤트워프 화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쿠엔틴 마시스의 초기작. 천의 주름과 질감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 성모의 옷자락이 접히는 방식, 디테일한 장식 묘사, 그리고 머릿결까지. 1497년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세밀하다. 초기작에서는 브뤼헤에서 활동한 멤링의 영향이 보인다고 하는데, 그 차분하고 정밀한 온도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성녀 안나 제단화 St Anne Altarpiece〉 쿠엔틴 마시스, 1507-1508
마시스의 대표작 중 하나. 앞서 본 1497년 성모자상과 비교해보면 10년 사이에 마시스의 화풍이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바로 보인다. 패널 구성과 인물 배치가 훨씬 안정적이고, 각 패널 속 서사도 풍부해졌다. 같은 화가의 두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어서 자연스럽게 비교하며 보게 된다.
— 브뤼헐 전시실 —
오픈런 덕분에 이 전시실을 거의 혼자 독점했다.
브뤼헐 그림들이 한 방에 모여 있다는 게 이렇게 압도적인 경험인지, 들어서는 순간 느낌이 달랐다.
훌륭한 작품이 많은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평일 오전에는 매우 여유있게 관람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아버지의 그림을 수없이 복제하고 모사한 것으로 유명한 피터르 브뤼헐 2세의 작품. 아버지 브뤼헐이 농민의 삶을 관찰자의 눈으로 담았다면, 아들의 그림은 그 구도와 소재를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어딘지 조금 다른 온도가 느껴진다. 화면 가득 흥겨운 야외 춤판 — 색채는 밝고 인물들은 생동감이 있는데, 아버지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그 묵직한 시선이 빠져 있다. 복제를 잘하는 화가와 창조하는 화가의 차이가 묘하게 드러나는 그림이다.
〈베들레헴의 영아 살해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피터르 브뤼헐 2세
〈베들레헴의 영아 살해 The Massacre of the Innocents〉 피터르 브뤼헐 2세
성경 속 헤롯왕의 영아 학살 이야기를 16세기 플랑드르 마을로 옮겨놓은 그림으로, 병사들이 스페인군과 독일 용병의 복장을 하고 있다. 당시 스페인 점령 하의 네덜란드 현실을 우회적으로 담은 정치적 발언이기도 했던 셈이다. 재미있는 건 이 작품의 복제 역사인데, 피터르 브뤼헐 2세가 이 그림을 적어도 열두 점 이상 복제해서 남겼다고 한다. 여기 브뤼셀 왕립미술관에 걸린 것도 그 사본들 중 하나다. 피터르 브뤼헐이 그린 원작은 영국 왕실 컬렉션에 있는데,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가 이 그림을 소장한 뒤 아기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라며 아이들을 식료품과 동물로 덧칠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검열이랄까, 시대의 민감함이랄까.
〈베들레헴의 인구 조사 The Census at Bethlehem〉 피터르 브뤼헐 1세 (1566) & 피터르 브뤼헐 2세 (1610)
〈베들레헴의 인구 조사 The Census at Bethlehem〉 피터르 브뤼헐 1세 (1566)
〈베들레헴의 인구 조사 The Census at Bethlehem〉 피터르 브뤼헐 2세 (1610)
이 전시실에서 가장 흥미로운 배치 중 하나. 아버지 브뤼헐 1세의 1566년 원작과 아들 브뤼헐 2세의 모작이 나란히 걸려 있어서 자연스럽게 비교가 된다. 성경 속 베들레헴 이야기를 16세기 브라반트 마을로 가져온 그림으로, 종교화이면서 동시에 스페인 점령 하 플랑드르의 현실을 담은 그림이기도 하다. 두 그림을 나란히 보면 구도와 소재는 거의 같은데, 아버지 그림의 눈 내리는 마을 풍경이 훨씬 더 촉촉하게 살아있다. 아들은 정확하게 옮겼지만, 그 공기감까지 옮기진 못했다.
〈새 덫이 있는 겨울 풍경 Winter Landscape with a Bird Trap〉 피터르 브뤼헐 1세, 1565
〈새 덫이 있는 겨울 풍경 Winter Landscape with a Bird Trap〉 피터르 브뤼헐 1세, 1565
브뤼헐의 겨울 풍경화 중에서도 특히 많이 알려진 작품. 얼어붙은 강 위에서 노는 사람들, 앙상한 나뭇가지들, 그리고 화면 오른쪽에 조용히 놓인 새 덫 하나. 거창한 서사 없이 그냥 어느 추운 겨울날의 스냅샷 같은데, 보고 있으면 그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브뤼헐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눈 덮인 풍경을 그린 선구자였고, 그의 겨울 풍경들이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피터르 브뤼헐 1세, 1559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피터르 브뤼헐 1세, 1559
이 그림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소란스럽다'. 화면 가득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제각각 뭔가를 하고 있는데, 왼쪽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육제, 오른쪽은 금식하고 기도하는 사순절이다. 두 세계가 한 광장 안에서 충돌하는 구도. 브뤼헐은 이런 식의 그림 — 한 화면 안에 수십 개의 작은 이야기를 동시에 담는 방식 — 을 특히 즐겼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반역 천사의 추락 The Fall of the Rebel Angels〉 피터르 브뤼헐 1세, 1562
〈반역 천사의 추락 The Fall of the Rebel Angels〉 피터르 브뤼헐 1세, 1562
이 그림을 처음 알게 된 건 BTS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에서였다. 멤버들이 미술관을 돌아다니다가 진이 이 그림 앞에 멈추는 장면을 보면서 '이게 뭔 그림이지?' 싶어서 찾아봤던 게 시작이었다. 보쉬 그림인 줄 알았는데 브뤼헐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실제로 이 그림은 처음에 왕립미술관에 보쉬의 작품으로 소장됐다가, 1900년 액자 뒤에서 브뤼헐의 서명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작가가 확정됐다고 한다. 그럴 만하다 — 천사들이 추락하면서 반쯤 괴물이 되어가는 그 형상들, 화면을 가득 채우는 혼돈의 밀도가 영락없이 보쉬다. 브뤼헐은 보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화가였고, 한때 '제2의 보쉬'라고 불리기도 했다. 실물로 보니 생각보다 훨씬 크고, 그 밀도에 압도되는 느낌이 있다.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브뤼헐 추정, 16세기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브뤼헐 추정, 16세기
전시실 설명을 오래 읽게 만드는 그림이다. 브뤼헐의 작품으로 오래 알려져 왔지만, 1996년 기술 분석 이후 작가 귀속이 불확실해졌다 — 미술관 측도 명판에 브뤼헐 이름 뒤에 물음표를 붙여뒀다. 그 사연은 잠깐 제쳐두고 그림 자체로 돌아오면 — 밭 가는 농부, 양 치는 목동, 낚시하는 어부, 그리고 지나가는 배. 화면 어디에도 이카루스는 없는 것 같은데, 오른쪽 아래 배 근처 바다를 자세히 보면 허우적거리는 두 다리가 보인다. 그게 이카루스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보지 않는다.
거기다 태양이 수평선에 지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다. 이카루스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올라 밀랍 날개가 녹아서 떨어진 거 아닌가? 그런데 태양이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지는 태양이 나중에 덧칠된 것일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고 하니,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림이 원래 의도한 그림과 같은지도 사실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그림인데, 그래서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전시실을 나와 루벤스 관으로 이동하는 복도에서도 브뤼헐 그림들이 계속 눈에 걸렸다.
〈성 마르틴 축일의 포도주 The Wine of Saint Martin's Day〉 피터르 브뤼헐 1세, 1565~1568
〈성 마르틴 축일의 포도주 The Wine of Saint Martin's Day〉 피터르 브뤼헐 1세, 1565~1568
이동 중에 만난 그림. 성 마르틴 축일에 포도주를 나눠 마시는 군중 장면인데, 브뤼헐 특유의 북적거리는 군중 묘사가 또 나온다. 이쯤 되면 브뤼헐의 그림 인구 밀도가 하나의 스타일이 된 것 같다.
〈지하 세계의 아이네아스 Aeneas in de onderwereld〉 얀 브뤼헐 2세, 17세기
〈지하 세계의 아이네아스 Aeneas in de onderwereld〉 얀 브뤼헐 2세, 17세기
이동 중에 발걸음이 멈춘 그림. 형인 피터르 2세가 현실의 농민과 아버지의 모작을 그렸다면, 얀 브뤼헐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상상력을 펼쳤다. 지옥 같은 배경, 빛을 발하는 존재들, 기괴한 생명체들... 아버지가 보쉬에게서 영향을 받았듯이, 이 그림에서도 그 계보가 느껴진다. 동시에 훨씬 후대의 상징주의 그림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들의 조합이 주는 분위기 때문인지, 이런 그림을 예상치 못한 복도에서 마주치는 게 미술관에 오는 이유가 아닐까?
— 루벤스 전시실 —
브뤼헐 전시실을 나와서 루벤스 전시실로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확 바뀐다. 브뤼헐이 농민의 일상을 관찰자처럼 담담하게 담았다면, 루벤스는 오페라 같다.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역동적인 인물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을 자아낸다. 이 전시실에서도 오픈런의 효과가 확실하게 체감됐다. 아름답고 거대한 그림들 앞을 거의 전세 내듯이 느긋하게 관람 할 수 있었다.
루벤스 전시실 전경
〈성모 마리아의 대관 The Coronation of the Virgin〉 페테르 파울 루벤스 & 작업실
〈성모 마리아의 대관 The Coronation of the Virgin〉 페테르 파울 루벤스 & 작업실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크기에 의한 압도감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빨강, 파랑, 노랑이 화면 전체에서 균형을 이루며 배치된 구도가 보인다. 그리고 그림 속 모든 시선이 중앙의 성모 마리아를 향하고 있어서, 보는 사람의 눈도 자연스럽게 거기로 수렴된다. 루벤스가 작업실 조수들과 함께 완성한 대형 제단화다. 루벤스 그림은 실물 크기로 봐야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성모 승천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루벤스 & 작업실, 1637
〈성모 승천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루벤스 & 작업실, 1637
천사들이 성모를 빛 쪽으로 들어 올리고, 11명의 사도들이 빈 무덤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구도. 여기서도 빨강, 파랑, 노랑의 삼색이 쓰인다 — 루벤스의 대형 제단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색 배치인데, 보다 보면 이게 의도적인 리듬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제단화 형식의 대형 캔버스에서 루벤스의 바로크 양식이 가장 힘 있게 작동한다는 걸, 이 방에서 연달아 보면서 확신하게 됐다.
〈갈보리로 올라가는 길 The Road to Calvary〉 루벤스, 1637
〈갈보리로 올라가는 길 The Road to Calvary〉 루벤스, 1637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이 각각 다른 감정을 담고 있다. 루벤스의 종교화가 단순한 교리 삽화가 아니라 하나의 극적인 장면으로 작동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 구도 전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 리비누스의 순교 The Martyrdom of St. Livinus〉 루벤스, 1633
〈성 리비누스의 순교 The Martyrdom of St. Livinus〉 루벤스, 1633
7세기 아일랜드 선교사 성 리비누스가 플랑드르에서 포교 중 공격을 받아 혀가 잘리고, 그것이 개에게 던져지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묘사가 꽤 적나라하다 — 집게로 혀를 들고 있는 자, 그것을 향해 짖어대는 개, 피 묻은 칼을 문 고문자까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헨트의 성 리비누스 교회 제단화로 제작된 대형 캔버스인데, 현재 브뤼셀 미술관에 걸려 있다. 위에서는 천사들이 순교자의 영혼을 맞이하고 있어, 지상의 잔혹함과 하늘의 평온이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리스도의 분노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성모 마리아와 성 프란치스코〉 루벤스 & 작업실, 1614년경
〈그리스도의 분노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성모 마리아와 성 프란치스코〉 루벤스 & 작업실, 1614년경
앞의 그림들과 달리 화려한 색채보다 어두운 배경이 주를 이루는 작품. 그 안에서 빨간색이 부분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대비가 오히려 더 강하게 눈을 끈다. 루벤스의 색채 감각이 밝고 화려한 것만이 아니라, 어두움 속에서의 강조에도 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그림이다.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있는 그리스도의 애도 The Lamentation of Christ with Saint Francis〉 루벤스, 1617~1620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있는 그리스도의 애도 The Lamentation of Christ with Saint Francis〉 루벤스, 1617~1620
피에타 형식의 구도. 루벤스가 그린 애도 장면은 극적이면서도 어딘지 절제가 있다. 바로 옆에 걸린 테오도르 반 론의 〈성모 승천〉과 나란히 보면, 같은 주제를 다른 화가가 다룰 때 얼마나 다른 온도가 나오는지 비교하게 된다.
— 동물화 & 정물화 —
루벤스 전시실을 나오면 분위기가 전환된다. 종교적인 대형 제단화들 대신, 동물과 일상의 물건들이 화면을 채운다.
〈수탉과 칠면조 Rooster and Turkey〉 / 〈개들의 수레 La charrette à chiens〉 얀 페이트, 1638~1661년경
〈수탉과 칠면조 Rooster and Turkey〉, 얀 페이트
〈개들의 수레 La charrette à chiens〉 얀 페이트
플랑드르 정물화 전통의 연장선에 있는 화가 얀 페이트의 작품 두 점이 나란히 걸려 있다. 깃털의 질감 하나하나가 공들여 묘사돼 있는데, 정물화인데도 생동감이 느껴진다.
〈생선 가게 Étal de poissonnier〉 프란스 스나이데어스
〈생선 가게 Étal de poissonnier〉 프란스 스나이데어스
생선들이 가득 쌓인 가게 풍경인데, 찬찬히 보면 어딘가에 고양이가 숨어서 생선을 노리고 있다. 플랑드르 정물화의 특징 중 하나가 이런 서사적 디테일을 화면 구석에 슬쩍 숨겨놓는 것인데, 찾는 재미가 있다.
〈바벨탑 The Tower of Babel〉 요스 데 몸페르 2세
출구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발견한 그림. 바벨탑 하면 브뤼헐의 그림이 먼저 떠오르는데 (브뤼헐의 바벨탑은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다) 이 미술관에는 요스 데 몸페르 2세 버전이 걸려 있다. 브뤼헐 셀렉션이 가득한 미술관에 브뤼헐의 바벨탑 대신 다른 화가의 바벨탑이 있다는 게 묘하게 느껴졌다. 두 화가의 바벨탑을 나란히 비교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빈까지 가야 한다.
〈헬레나 푸르망의 초상 Portrait of Helena Fourment〉 루벤스, 1630년경
헬레나 푸르망의 초상 Portrait of Helena Fourment〉 루벤스, 1630년경
대형 종교화들과 완전히 다른 온도다. 루벤스는 첫 번째 아내 이사벨라가 세상을 떠난 후 헬레나 푸르망과 재혼했는데, 당시 헬레나의 나이는 16세, 루벤스는 53세였다. 그 나이 차이가 어떻든 간에, 루벤스가 그녀를 그린 수많은 초상화들에는 분명히 애정이 담겨 있다. 따뜻함과 친밀감이 배어 있는 그림인데, 제단화에서 볼 수 없는 루벤스의 또 다른 면이다.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마그리트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오픈런으로 다시 찾은 오르세. 전날 오후와는 확실히 달랐다. 관광객이 많이 없으니 그림 앞에서 여유롭게 서있을 수 있었고, 줄을 설 필요도 없었다. 특히나 어제 오후에 보았던 인상주의 관람관에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둘째 날 보았던 동선은 매우 여유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오르세는 그냥 오픈런이 답이다.
5층 · 후기 인상주의
앙리 에드몽 크로스 (Henri-Edmond Cross)
저녁의 미풍 (The Evening Air, 1893~1894)
[저녁의 미풍] (The Evening Air, 1893~1894)
점묘법을 기반으로 하되 색점이 크고 대담하게 찍혀있어 시냑이나 쇠라보다 훨씬 따뜻하고 느슨한 인상을 준다. 저녁 바닷가의 공기를 담으려 한 건지, 화면 전체에서 미지근하고 나른한 온도가 느껴진다. 크로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지만 이 그림 앞에 서면 왜 후기 인상주의 전시실의 첫 그림으로 배치됐는지 자연스럽게 납득이 간다.
폴 시냑 (Paul Signac)
양산을 든 여인 (Femme à l'ombrelle, 1893)
[양산을 든 여인] (Femme à l'ombrelle, 1893)
시냑 특유의 정교한 점묘법이 잘 드러나는 작품. 인물보다 배경의 색점들이 더 눈길을 끌 정도로 화면 전체가 색으로 진동하는 느낌이다. 모네의 양산 든 여인 시리즈와 같은 주제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조르주 모렌 (Georges Morren)
조화 속에서 (A l'Harmonie, 1891)
[조화 속에서] (A l'Harmonie, 1891)
공원의 한 장면을 담은 작품으로, 점묘법의 질서 안에서 일상의 평온함을 포착했다. 시냑이나 쇠라의 그늘에 가려 잘 언급되지 않는 작가지만 차분하게 오래 볼 수 있는 그림이다.
폴 고갱 (Paul Gauguin)
황색의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the Yellow Christ, 1890~1891)
[황색의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the Yellow Christ, 1890~1891)
뒤에 자신의 작품인 황색의 그리스도를 배치하고 정면을 바라보는 자화상. 단순한 자화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예술과 동일시하는 선언처럼 읽히는 그림이다. 표정은 담담하지만 그 뒤로 걸린 그리스도의 존재감이 묘하게 무겁다.
슈페네커의 아틀리에 (L'Atelier de Schuffenecker, 1889)
[슈페네커의 아틀리에] (L'Atelier de Schuffenecker, 1889)
고갱의 친구이자 화가였던 슈페네커의 작업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 가족들의 모습이 담겨 있지만 분위기는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따뜻한 일상화처럼 보이면서도 인물들 사이에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그들의 몸의 황금 (Et l'or de leur corps, 1899)
[그들의 몸의 황금] (Et l'or de leur corps, 1899)
타히티 여인들을 그린 말년 작품 중 하나. 황금빛이 감도는 피부와 평평하게 처리된 배경이 고갱 특유의 원시적인 화면을 만들어낸다. 이국적인 시선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색채만큼은 압도적이다.
바이루마티 (Vairumati, 1897)
[바이루마티] (Vairumati, 1897)
타히티 신화 속 여신을 모델로 한 작품. 인물의 당당한 자세와 배경의 상징적인 요소들이 고갱이 타히티에서 찾으려 했던 것들을 압축해 보여주는 듯하다.
아레아레아 (Arearea, 1892)
[아레아레아] (Arearea, 1892)
고갱관에서 색감이 가장 화려했던 그림 중 하나. 선명한 붉은 개와 초록빛 배경, 황토색 인물들이 충돌하듯 어우러지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고갱이 색을 얼마나 과감하게 썼는지 가장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백마 (Le Cheval blanc, 1898)
[백마] (Le Cheval blanc, 1898)
정글 속 흰 말을 담은 작품인데, 흰 말이라고 하기엔 초록빛이 강하게 감돈다. 빛과 식물의 색이 말의 몸에 반사되어 물드는 걸 표현한 건데, 보는 사람에 따라 생경하거나 몽환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그림이다.
5층 · 상징주의 — 오딜롱 르동
귀스타브 모로를 기대하고 들어섰다가 오딜롱 르동이 방 하나를 통째로 채우고 있는 걸 발견했다. 조금 의외였지만, 프랑스가 상징주의의 대표로 모로보다 르동을 더 전면에 내세우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귀스타브 모로 박물관은 따로 방문 예정이었으니 아쉬움은 거기서 달래기로 했다.
오딜롱 르동 (Odilon Redon)
도메시 남작 부인의 초상 (Portrait of Baronne Robert de Domècy, 1900)
[도메시 남작 부인의 초상] (Portrait of Baronne Robert de Domècy, 1900)
상징주의 작가의 초상화라니 처음엔 좀 의외였다. 하지만 르동의 초상화는 여느 초상화와 달리 배경부터 몽환적이고 색채가 상징적이다. 현실의 인물을 그리면서도 르동만의 세계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그림이다.
항아리 속의 초록 식물 (Plante verte dans une urne, 1900년경)
[항아리 속의 초록 식물] (Plante verte dans une urne, 1900년경)
정물화인데 르동이 그리면 정물도 다르다. 식물의 형태보다 색과 분위기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어딘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상징주의 작가도 일상적인 소재를 그렸다는 사실이 오히려 흥미로웠다.
이집트로의 피신 (The Flight into Egypt, 1900년경)
[이집트로의 피신] (The Flight into Egypt, 1900년경)
상징주의 그림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 성서의 장면을 담았는데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빛과 색으로 신성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인물 주변의 휘광 처리가 귀스타브 모로의 방식과 닮아 있어서 잠깐 모로가 떠오르기도 했다.
인물 (Figure, 1901) / 노란 꽃과 인물 (Figure, fleur jaune, 1901)
나란히 전시된 한 쌍의 패널화. 인물과 꽃이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화면이 르동의 세계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이 두 그림 앞에서 프랑스가 왜 르동을 이렇게 사랑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식물 문양의 대형 패널 (Grand panneau à décor végétal, 1901)
[식물 문양의 대형 패널] (Grand panneau à décor végétal, 1901)
처음 보는 순간 동양화가 떠올랐다. 여백의 활용이나 식물 문양의 처리 방식이 낯설지 않았는데, 고흐가 일본 그림에 빠졌듯 그 시대 서양 화가들 사이에서 동양 기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돔시 성의 식당을 위한 장식화 (Décoration pour la salle à manger du château de Domècy, 1900~1901)
[돔시 성의 식당을 위한 장식화] (Décoration pour la salle à manger du château de Domècy, 1900~1901)
세 폭으로 이루어진 대형 장식화 연작. 왼쪽부터 《노란색 배경의 나무》, 《노란색 배경의 나무들》, 《노란색 꽃이 핀 가지》 순서로 이어진다. 원래 도메시 남작이 의뢰한 17점 연작 중 15점이 오르세 소장품인데, 그 중 일부를 전시하고 있는 것. 파스텔과 수채화 기법을 섞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처음 보는 순간 동양화가 떠오를 정도로 일본 병풍 화풍의 영향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돔시 성의 식당을 위한 장식화 - 좌측 패널돔시 성의 식당을 위한 장식화 - 중간 패널돔시 성의 식당을 위한 장식화 - 우측 패널
2층
5층에서 계단을 내려와 2층으로 이동했다.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구간이었다.
피에르 보나르 (Pierre Bonnard)
정원의 여인들 (Femmes au jardin, 1891)
[정원의 여인들] (Femmes au jardin, 1891)
나비파 특유의 자유로운 색채와 평면적인 공간 구성이 눈에 띄는 작품. 처음 보면 포스터나 삽화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게 나비파가 의도한 방향이기도 하다. 알폰소 무하가 연상되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당시 아르누보와 나비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하고 있었다.
프랑수아 가라 (François Garas)
베토벤에게 헌정된 사유의 사원, 달빛 아래의 사원 환상 (Temple à la pensée, dédié à Beethoven, 1905~1909)
[베토벤에게 헌정된 사유의 사원, 달빛 아래의 사원 환상] (Temple à la pensée, dédié à Beethoven, 1905~1909)
SF 영화에 나올 법한 비주얼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그림. 웅장하고 비현실적인 건축물이 달빛 아래 신비롭게 펼쳐지는데, 19세기 말 그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적인 감각이다. 한참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그림이었다.
조반니 볼디니 (Giovanni Boldini)
축제 장면 (Feast Scene, 1889)
[축제 장면] (Feast Scene, 1889)
앞의 몽환적인 그림과 대비되듯, 19세기 말 파리의 화려하고 활기찬 밤 문화가 붉은 배경 위에 펼쳐진다. 볼디니는 당대 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초상화가 중 한 명이었는데, 이 그림에서도 그 생동감 넘치는 붓터치가 잘 드러난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Henri de Toulouse-Lautrec)
[화장] (La Toilette, 1889)
이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 뭔가에 홀린 것처럼 발이 멈춰버렸는데,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선, 등의 윤곽, 주변 사물들을 처리하는 붓터치가 이상하게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전에 오르세에 왔을 때 고흐 자화상의 물감 질감에서 소름이 돋았다면, 이번엔 로트렉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정말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세잔의 그림이라는 걸 알고 나서 한 번 더 놀라게 되는 작품. 우리가 알고 있는 세잔의 정물화나 풍경화와는 전혀 다른 세계다. 극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을 거칠고 어두운 붓터치로 담아낸 게 뭉크를 떠올리게 한다. 초기 세잔이 이런 어둠을 품고 있었다는 게 흥미롭다.
다섯 명의 목욕하는 사람들 (Cinq baigneurs, 1885~1887)
[다섯 명의 목욕하는 사람들] (Cinq baigneurs, 1885~1887)
세잔이 반복해서 그린 목욕하는 사람들 연작 중 하나. 인물들의 형태가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되어 있어서 이후 입체주의의 씨앗이 보이는 작품이다.
열린 서랍이 있는 정물 (Nature morte avec tiroir ouvert, 1877~1879)
[열린 서랍이 있는 정물] (Nature morte avec tiroir ouvert, 1877~1879)
세잔 정물화의 특징인 다시점 구도가 잘 드러나는 작품. 서랍이 살짝 열려있는 평범한 일상의 물건들인데, 보는 각도가 미묘하게 뒤틀려 있어 화면이 독특한 긴장감을 갖는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생레미의 생폴 병원 (L'hôpital Saint-Paul à Saint-Rémy, 1889)
[생레미의 생폴 병원] (L'hôpital Saint-Paul à Saint-Rémy, 1889)
아를에서 귀 절단 사건 이후 고흐가 자진 입원한 생폴 드 모졸 요양원을 그린 작품이다. 1889년 5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이곳에 머물며 약 150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자화상과 별이 빛나는 밤도 이 시기 작품이다. 5층 고흐관의 그림들을 먼저 보고 이 그림을 마주치면 그 시기의 맥락이 겹쳐지면서 다르게 읽힌다.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크리스탈 화병의 꽃 (Fleurs dans un vase de cristal, 1882)
[크리스탈 화병의 꽃] (Fleurs dans un vase de cristal, 1882)
마네의 정물화. 두툼하게 쌓인 물감의 질감이 좋고 색감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화병 속 꽃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싱싱하게 느껴진다.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 — 조각
지옥의 문 (Porte de l'Enfer)
[지옥의 문] (Porte de l'Enfer)
로댕의 대표작으로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은 대형 조각이다. 볼만한 작품인 건 분명한데, 아직은 그림에 비해 조각에서 같은 감흥이 오지 않아서 온전히 감상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조각도 언젠가 그 매력이 열리는 순간이 올 것 같기도 하고.
귀스타브 모로 (Gustave Moreau)
드디어 찾았다. 5층 상징주의 전시실에서 기대했다가 못 만났던 귀스타브 모로가 2층에 있었다.
갈라테이아 (Galatée, 1880)
[갈라테이아] (Galatée, 1880)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바로 빠져들게 만드는 그림이다. 이번 여행에서 귀스타브 모로 박물관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연속된 파업으로 결국 가지 못했다. 샬로메나 제우스와 세멜레를 실물로 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갈라테이아만으로도 파리를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디테일과 화려함이 압도적인 그림이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이아손과 마법사 메데이아의 만남을 담은 작품이다.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손에 넣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메데이아가 그의 곁에 바짝 붙어있는 구도인데, 두 인물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 묘하다. 아카데미즘 특유의 정교한 묘사 위에 상징적인 분위기가 얹혀있어서, 고전 회화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어딘가 신비롭고 불온한 기운이 감도는 그림이다.
오르페우스 (Orphée, 1865)
[오르페우스] (Orphée, 1865)
죽은 오르페우스의 머리와 리라를 소녀가 경건하게 받쳐 들고 있는 장면. 잔혹한 신화의 결말을 이처럼 고요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게 모로다운 지점이다.
알퐁소 오스베르 (Alphonse Osbert)
비전 (Vision, 1892)
[비전] (Vision, 1892)
누가 보면 현대에 그린 그림이라고 할 것 같은 비주얼이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강한데, 모로 옆에 걸려있어서 상징주의의 계보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호아킨 소로야 (Joaquín Sorolla)
고기잡이의 귀환: 배를 끌어올리며 (La vuelta de la pesca, 1894)
[고기잡이의 귀환: 배를 끌어올리며] (La vuelta de la pesca, 1894)
한국인이 사랑하는 소로야. 소로야하면 발렌시아 해변의 따뜻하고 눈부신 그림을 흔히 떠올리지만, 이 작품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어부들이 힘겹게 배를 끌어올리는 장면을 대형 캔버스에 담았는데, 사진처럼 섬세한 표현과 역동적인 구도가 대단하다. 소로야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1층 · 마네 전시실
1층으로 내려오면 마네만을 위한 전시실이 있다.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롤라 드 발랑스 (Lola de Valence, 1862)
[롤라 드 발랑스] (Lola de Valence, 1862)
스페인 출신의 플라멩코 댄서를 그린 작품으로, 마네가 스페인 예술에 깊이 매료되어 있던 시기의 그림이다. 의상의 화려한 색감과 인물의 당당한 자세가 인상적이며, 당시 마네의 친구였던 시인 보들레르가 이 그림을 보고 시를 헌정했을 정도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독서 (La Lecture, 1865~1873)
[독서] (La Lecture, 1865~1873)
마네의 아내 쉬잔이 책을 읽는 장면을 담은 작품. 올랭피아 같은 도발적인 그림들 사이에서 이 그림은 유독 조용하고 일상적이다.
올랭피아 (Olympia, 1863)
[올랭피아] (Olympia, 1863)
1865년 살롱에 출품되자마자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킨 작품이다.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같은 구도지만, 신화 속 여신이 아니라 당대 파리의 실제 매춘부를 모델로 했다는 점에서 당시 관람객들에게 충격을 줬다. 더 도발적인 건 인물의 시선인데, 누워있으면서도 관람객을 정면으로 당당하게 바라보고 있다. 화면 속 흑인 하녀와 검은 고양이까지, 모든 요소가 의도적으로 배치된 이 그림은 단순한 누드화를 넘어 당시 사회의 위선을 정면으로 건드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지금 봐도 그 시선의 힘이 느껴진다.
피리 부는 소년 (Le Fifre, 1866)
[피리 부는 소년] (Le Fifre, 1866)
군악대의 어린 소년을 그린 작품인데, 당시 화단에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그림으로 받아들여졌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배경이 완전히 비어있다는 것으로, 전통적인 회화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공간감이나 음영이 없고 인물이 평면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는 마네가 일본 우키요에 판화에서 영향을 받은 결과로, 이런 과감한 평면성이 이후 인상주의와 현대 미술이 나아갈 방향을 미리 열어젖힌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들라크루아까지 낙선 처리했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마네의 대표작 중 하나다.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정원의 여인들 (Femmes au jardin, 1866)
[정원의 여인들] (Femmes au jardin, 1866)
5층에서 봤던 모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비슷한 시기, 비슷한 화풍의 작품이다. 야외의 자연광을 화면에 담으려는 시도가 분명히 보이고, 구도도 그 그림과 맥이 닿아있다.
아틀리에의 한 구석 (Coin d'atelier, 1861)
[아틀리에의 한 구석] (Coin d'atelier, 1861)
모네의 아주 초기작. 정물화인데 신선한 구도와 주제가 인상적이다. 이 그림을 그렸을 때 모네는 스물한 살이었다.
트루빌의 로슈 누아르 호텔 (L'Hôtel des Roches Noires, Trouville, 1870)
[트루빌의 로슈 누아르 호텔] (L'Hôtel des Roches Noires, Trouville, 1870)
바람에 펄럭이는 국기와 화창한 하늘이 모네 그림에서 많이 봤던 익숙한 느낌이다. 깃발과 하늘을 표현하는 빠른 붓터치가 이미 완전한 모네의 언어로 느껴진다.
노르망디 농장의 뜰 (A Farmyard in Normandy, 1863~1865)
[노르망디 농장의 뜰] (A Farmyard in Normandy, 1863~1865)
초기 모네의 차분하고 사실적인 면이 보이는 풍경화. 인상주의 이전 모네의 색깔이 담겨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 (Jean-François Millet)
봄 (Le Printemps, 1868~1873)
[봄] (Le Printemps, 1868~1873)
밀레가 생애 말년에 작업한 사계 연작 중 하나다. 1868년 후원자의 의뢰로 시작했는데, 봄과 여름, 가을은 완성했지만 겨울은 미완성으로 남긴 채 1875년에 세상을 떠났다. 연작 중 봄만 오르세에 있고 나머지는 보스턴, 메트로폴리탄, 웨일스 국립박물관에 흩어져 있다. 사실주의 화가로 알려진 밀레가 말년에 이렇게 서정적이고 빛이 충만한 풍경화를 남겼다는 게 인상 깊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Jean-Auguste-Dominique Ingres)
5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동선이 미술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고흐와 인상주의를 보고 내려왔더니 이제 앵그르가 나온다.
성체를 숭배하는 성모 (La Vierge à l'hostie, 1854)
[성체를 숭배하는 성모] (La Vierge à l'hostie, 1854)
성모 마리아가 두 손을 모아 성체를 경건하게 바라보는 장면을 담은 종교화다. 앵그르가 신고전주의의 수호자로서 얼마나 정교하고 경건한 화면을 구사했는지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샘 (La Source, 1820~1856)
[샘] (La Source, 1820~1856)
너무나 유명한 그림. 피렌체에서 시작해 파리에서 완성하기까지 무려 36년이 걸린 작품이다. 앵그르가 이 그림을 완성했을 때 나이가 76세였다고 하니, 평생을 걸쳐 다듬어온 셈이다. 신고전주의 이상미의 정점이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은 그림이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William-Adolphe Bouguereau)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 1879)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 1879)
이것도 너무나도 유명한 그림. 부그로 특유의 매끄럽고 완벽하게 다듬어진 화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앵그르의 샘과 나란히 보면 19세기 아카데미즘이 추구한 이상미가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5층에서 시작해 2층을 거쳐 1층으로 내려오면서 미술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셈이 됐다. 고흐와 인상주의로 시작해서 앵그르와 아카데미즘으로 끝나는 동선, 원래 전시되는 이삭줍기나 만종 같은 사실주의 그림들이 해외 전시 나가 있어 이번에는 보지 못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꽤나 강렬한 경험이었다.
예고 없이 마주친 거라 오히려 더 당황스러울 정도였는데, 그림 앞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가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또 다른 게 보이고. 이 그림, 오래 볼수록 계속 뭔가가 나온다.
귀스타브 모로, Galatée, 1880, 오르세 미술관 소장
신화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갈라테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님프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가 그녀에게 집착했지만, 갈라테이아는 그를 외면하고 양치기 청년 아키스를 사랑했다는 이야기. 모로의 그림에서 왼쪽 위 어둠 속에 반쯤 묻혀 있는 거인의 얼굴이 폴리페모스다. 갈라테이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둡고 무겁다. 반면 갈라테이아는 눈을 감은 채, 그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구도가 꽤 영리하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폴리페모스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는데, 결국 우리도 그와 같은 위치에서 갈라테이아를 바라보게 된다. 일방적인 응시의 구조 안에 관람자까지 포함시키는 방식.
귀스타브 모로, Galatée, 1880, 오르세 미술관 소장
화면을 구성하는 두 개의 세계
그림 전체를 보면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뉜다. 갈라테이아의 몸을 중심으로 한 밝고 매끄러운 공간과, 그 주변을 에워싼 어둡고 복잡한 배경. 이 대비가 단순히 밝고 어두운 문제가 아니라, 질감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갈라테이아의 피부는 고전적인 아카데미 회화처럼 깨끗하고 부드럽게 처리되어 있다. 그런데 그 주변으로는 산호, 해초, 기묘한 식물들이 뒤엉킨 세계가 펼쳐진다. 마치 두 가지 다른 화풍이 한 캔버스 안에 공존하는 것 같다.
몸 주변 산호와 장식 문양 디테일
갈라테이아 몸 주변 클로즈업. 피부의 매끈한 질감과 배경의 복잡한 레이어가 바로 맞닿아 있다.
덧그린 선들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이상한 것들이 많다. 산호 군락 위에 흰색과 구리빛으로 그어진 선들 — 저건 나중에 덧그린 거다. 물감이 굳은 위에 얇은 붓으로 긁어내듯 그린 것 같은 질감인데, 레이스 같기도 하고 식물 같기도 한 패턴이 반복된다. 그 옆으로 붉은 산호 덩어리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두텁게 올려져 있어서 거의 조각처럼 튀어나와 있다. 갈라테이아의 매끄러운 피부 표현과 나란히 두면 같은 화가가 그린 게 맞나 싶을 정도.
하단 오른쪽 — 황금빛 폭포와 수중 세계
중앙의 황금빛 줄기를 중심으로 수중 생물들과 장식 문양이 가득하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더 촘촘해진다.
오른쪽 하단으로 시선을 내리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중앙의 황금빛 줄기 — 갈라테이아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린 건지, 빛의 기둥인지 — 를 중심으로 수중 생물들과 장식 문양이 층층이 쌓여 있다. 맨 아래 고여 있는 물에는 그 위의 것들이 반사되고, 파란색과 금색이 뒤섞인다.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부터가 반영인지 경계가 흐릿하다. 모로가 의도적으로 공간을 모호하게 만든 부분이기도 하다.
피부와 배경의 경계 클로즈업
갈라테이아의 다리와 꽃 배경이 맞닿는 왼쪽 하단 부분. 이 경계에서 두 세계의 질감 차이가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
이 부분도 흥미로웠다. 왼쪽 하단, 다리의 매끄럽고 담백한 피부 표현과 그 옆으로 두껍게 올라온 초록빛 꽃과 식물들이 경계선 하나를 두고 바로 붙어있다. 그 대비가 너무 선명해서 가까이서 보면 콜라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근데 그게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이 그림의 긴장감을 만드는 요소다.
갈라테이아 얼굴과 머리카락 클로즈업
눈을 감고 있는 갈라테이아. 머리카락과 꽃, 산호가 뒤섞인 배경이 함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보인다. 황금빛 머리카락 사이로 흰 꽃들이 박혀 있고, 그 뒤로 붉은 산호 가지들이 뻗어 있다. 꽃과 산호가 뒤섞인 이 공간이 어떤 세계인지 확실히 말하기 어렵다. 바닷속인지, 숲인지, 아니면 그 경계 어딘가인지. 모로가 의도적으로 현실 공간을 모호하게 설정했다는 게 여기서도 느껴진다.
눈을 감고 있는 표정은 편안해 보이기도 하고, 어떤 세계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폴리페모스의 무거운 시선이 화면 위에 존재하는데도 갈라테이아는 완전히 자기 세계 안에 있다.
모로는 평생 신화와 성경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과잉된 장식 언어를 발전시켰다.
갈라테이아는 그 중에서도 꽤 초기작인데, 이미 특징이 다 갖춰져 있다.
화려한 색, 이질적인 질감의 공존, 상징적인 구도, 그리고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분위기.
파리 뮤지엄 패스로 오르세를 이틀 다녀왔다. 첫날은 오후 늦게 가면 좀 한산하지 않을까 싶어서 시도해봤고 두 번째 날은 오픈런으로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후 늦게는 마감 시간까지도 관광객이 가득했고, 오픈런 때가 압도적으로 여유로웠다. 오르세는 그냥 오픈런이 답인 것 같다.
루브르, 퐁피두 센터와 함께 파리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곳.
근데 이 세 개 중에서 오르세가 좀 특별한 건, 건물 자체가 이미 작품이라는 점이다.
원래 기차역이었던 건물이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역사상 첫 사례인데, 1900년 만국박람회에 맞춰 세 명의 건축가가 설계해서 완성한 오를레앙 철도의 종착역이었다. 그러다 전동차 동력이 전기로 바뀌면서 긴 차량을 수용하지 못하게 됐고, 1939년 장거리 노선이 폐지되면서 역으로서의 기능이 쇠퇴했다. 이후 한동안 방치됐다가 1986년 미테랑 대통령이 공식 개관하면서 지금의 오르세가 됐다.
플랫폼이 있어야 할 자리에 볕이 잘 드는 거대한 오픈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많은 예술 애호가들이 "오르세에서 처음 만나는 작품은 미술관 그 자체"라고 한다. 입장하는 순간 바로 체감이 되는 말이다.
컬렉션은 1848년부터 1914년 사이에 제작된 회화, 조각 작품을 중심으로, 특히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의 컬렉션이 핵심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상주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고, 모네·드가·반 고흐·고갱·르누아르 등 교과서에서 봤던 이름들이 다 여기 모여 있다고 보면 된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도 여기 소장품이다.
사진을 예술로 인정해서 컬렉션에 포함시킨 것도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70년대의 일인데, 당시 프랑스에 사진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없었을 때 오르세가 처음으로 사진을 전시물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인상주의가 사진의 등장으로 촉발된 미술사적 흐름이라는 걸 생각하면 꽤 아이러니한 구성이기도 하다.
대한항공 덕분에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지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낯선 나라 미술관에서 한국어 안내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생각보다 편하다.
오르세 미술관
첫째 날 — 오후 늦게 입장
5층 · 고흐관
입장하자마자 5층으로 직행했다.
5층은 인상주이 화가들과 탈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 공간인데,
한국 사람 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조는 역시 인상주의가 맞는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고흐관은 오르세에서 관객이 가장 몰리는 곳 중 하나인데,
인기 작품 앞은 줄을 서야 가까이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5층 고흐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Nuit Étoilée sur le Rhône, 1888)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Nuit Étoilée sur le Rhône, 1888)
론강 위로 쏟아지는 별빛과 수면의 반영을 담은 작품. 뉴욕 MoMA의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과는 다른 그림이다.
[정오의 휴식, 밀레를 따라] (La Sieste, 1890)
[정오의 휴식, 밀레를 따라] (La Sieste, 1890)
밀레의 원작을 고흐 특유의 굵고 역동적인 붓터치로 재해석한 작품.
[아니에르의 시렌느 레스토랑] (Das Restaurant de la Siréne in Asnières, 1887)
[아니에르의 시렌느 레스토랑] (Das Restaurant de la Siréne in Asnières, 1887)
파리 교외의 작은 레스토랑을 밝고 경쾌한 색감으로 담아낸, 인상주의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시기의 작품.
[가셰 박사의 초상] (Le docteur Paul Gachet, 1890)
[가셰 박사의 초상] (Le docteur Paul Gachet, 1890)
고흐 말년의 주치의이자 친구였던 가셰 박사를 그린 초상화. 오르세 소장본과 별도로 다른 버전도 존재한다.
[오베르의 교회] (L'église d'Auvers-sur-Oise, 1890)
[오베르의 교회] (L'église d'Auvers-sur-Oise, 1890)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오베르쉬르우아즈의 교회. 하늘과 건물의 윤곽선이 꿈틀거리듯 살아있다.
[두 아이] (Zwei Kinder, 1890)
[두 아이] (Zwei Kinder, 1890)
오베르 시기에 그린 아이들의 초상. 단순하지만 표정과 눈빛에 묘하게 시선이 머무는 그림이다.
[코르드빌의 초가집들] (Chaumes de Cordeville à Auvers-sur-Oise, 1890)
[코르드빌의 초가집들] (Chaumes de Cordeville à Auvers-sur-Oise, 1890)
초가지붕과 나무들이 물결치듯 흘러가는 풍경화. 고흐 특유의 소용돌이치는 필선이 잘 드러난다.
[정원의 마르그리트 가셰] (Mademoiselle Gachet au jardin, 1890)
[정원의 마르그리트 가셰] (Mademoiselle Gachet au jardin, 1890)
가셰 박사의 딸을 정원에서 그린 작품. 화사한 꽃들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 어딘가 조용하고 고요하다.
[가셰 박사의 정원] (Dans le jardin du docteur Gachet, 1890)
[가셰 박사의 정원] (Dans le jardin du docteur Gachet, 1890)
박사의 정원 풍경을 담은 작품으로, 마르그리트 가셰 그림과 같은 공간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느낌이다.
[자화상] (Self-portrait, 1889)
[자화상] (Self-portrait, 1889)
고흐가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기에 그린 자화상. 배경을 가득 채운 소용돌이치는 붓터치가 강렬하게 눈에 들어온다.
5층 · 르누아르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베른하임 드 빌러 부부의 초상] (Portrait de Monsieur et Madame Bernheim de Villers, 1910)
[베른하임 드 빌러 부부의 초상] (Portrait de Monsieur et Madame Bernheim de Villers, 1910)
르누아르 특유의 부드러운 필치로 그려낸 부부 초상화.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편안하게 느껴진다.
[목욕 후의 휴식] (Nu couché, vu de dos, 1909)
[목욕 후의 휴식] (Nu couché, vu de dos, 1909)
뒤를 보인 채 누워있는 여인의 누드화. 르누아르 후기 작품답게 풍성하고 따뜻한 살갗의 색감이 두드러진다.
[목욕하는 여인들] (Les Baigneuses, 1918-1919)
[목욕하는 여인들] (Les Baigneuses, 1918-1919)
르누아르 말년의 대표작 중 하나. 자연 속 여인들을 관능적이면서도 고전적인 구도로 담아낸 작품이다.
[조스 베른헤임 죈 부인과 그녀의 아들 앙리] (Madame Josse Bernheim-Jeune et son fils Henry, 1910)
[조스 베른헤임 죈 부인과 그녀의 아들 앙리] (Madame Josse Bernheim-Jeune et son fils Henry, 1910)
어머니와 아들을 함께 담은 초상화. 앞서 본 베른하임 드 빌러 부부 초상과 같은 컬렉터 가문으로, 르누아르와의 인연이 느껴진다.
[밀짚모자를 쓴 소녀] (Fillette au chapeau de paille, 1908)
[밀짚모자를 쓴 소녀] (Fillette au chapeau de paille, 1908)
밀짚모자를 쓴 소녀를 부드럽고 화사하게 담아낸 작품. 르누아르가 아이들을 그릴 때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잘 드러난다.
[도시의 무도회](Danse dans la Ville, 1883)
[도시의 무도회] (Danse dans la Ville, 1883)
우아하게 춤추는 남녀를 그린 작품. 같은 시기에 그린 《시골의 무도회》와 한 쌍을 이루는 그림으로, 두 그림의 분위기 차이가 꽤 재미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르누아르관, 아니 오르세 전체를 통틀어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 파리 몽마르트르의 야외 무도회 풍경을 담은 대형 캔버스로, 빛과 인파가 어우러진 생동감이 압도적이다.
[그네] (La balançoire, 1876)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인물들 위에 얼룩지듯 떨어지는 장면. 물랭 드 라 갈레트와 같은 해에 그려진 작품으로, 나란히 보면 르누아르가 빛을 얼마나 집요하게 탐구했는지 느껴진다.
센강변 레스토랑 주인의 딸을 그린 초상화. 훗날 《뱃놀이 파티의 점심》에도 등장하는 인물로, 르누아르의 단골 모델 중 하나였다.
5층 · 모네관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수련이 있는 연못, 녹색의 조화] (The Lily Pond, Green Harmony, 1898)
[수련이 있는 연못, 녹색의 조화] (The Lily Pond, Green Harmony, 1898)
지베르니 정원의 수련 연못을 담은 작품. 모네가 평생 집착했던 주제의 초기작으로, 이후 수련 연작의 출발점 같은 그림이다.
[지베르니 부근의 센 강 지류] (Branch of the Seine near Giverny, 1897)
[지베르니 부근의 센 강 지류] (Branch of the Seine near Giverny, 1897)
안개 낀 수면과 나무가 어우러진 조용한 풍경. 모네 특유의 흐릿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잘 살아있다.
[지베르니의 뱃놀이] (The Boat at Giverny, 1887)
[지베르니의 뱃놀이] (The Boat at Giverny, 1887)
잔잔한 수면 위 보트와 인물들을 담은 작품. 물의 반영과 색감이 인상적이다.
[수련] (Blue Water-Lilies, 1916~1919)
[수련] (Blue Water-Lilies, 1916~1919)
모네 말년의 수련 연작 중 하나. 캔버스를 가득 채운 파란 수면과 수련이 거의 추상화에 가깝게 느껴진다.
[양산을 쓰고 왼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Woman with a Parasol, facing left, 1886)
[양산을 쓰고 왼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Woman with a Parasol, facing left, 1886)
바람에 옷자락이 날리는 여인을 빠른 붓터치로 포착한 작품. 한 쌍으로 그려진 그림이라 오른쪽 버전과 나란히 보는 재미가 있다.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Woman with a Parasol, turned to the right, 1886)
[양산을 쓰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여인] (Woman with a Parasol, turned to the right, 1886)
왼쪽 버전과 구도는 비슷하지만 빛의 방향과 분위기가 미묘하게 다르다. 같은 인물인데 전혀 다른 순간처럼 느껴진다.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 (Poppies at Argenteuil, 1873)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 (Poppies at Argenteuil, 1873)
붉은 양귀비가 가득한 들판을 경쾌하게 담아낸 작품. 모네 인상주의 초기의 생기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 (Luncheon on the Grass, 1865~66)
[풀밭 위의 점심식사] (Luncheon on the Grass, 1865~66)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본 모네가 직접 오마주로 제작한 대형 작품이다. 원래는 가로 6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캔버스였는데, 보관 중 훼손되어 현재 오르세에는 일부만 남아있다. 모네가 직접 잘라낸 것으로 알려져 있고, 남아있는 조각만으로도 크기가 상당해서 실물 앞에 서면 압도되는 느낌이 든다. 존재를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마주치면 소름 돋는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 (Luncheon on the Grass, 1865~66) 좌측패널
[풀밭 위의 점심식사] (Luncheon on the Grass, 1865~66) 우측패널
5층 · 마네, 세잔, 드가, 카유보트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풀밭 위의 점심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 1863)
[풀밭 위의 점심식사] (Le Déjeuner sur l'herbe, 1863)
모네관에서 봤던 그 오마주의 원본. 당시 살롱에서 엄청난 논란을 일으킨 작품으로, 정장 차림의 남성들 사이에 나체 여성이 태연하게 앉아있는 구도가 지금 봐도 꽤 도발적이다. 모네 버전을 먼저 보고 원본을 보면 두 그림의 온도 차이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폴 세잔 (Paul Cézanne)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Apples and Oranges, 1899)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Apples and Oranges, 1899)
세잔 정물화의 정수 같은 작품. 과일과 천의 배치가 단순해 보이지만 볼수록 화면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에스타크에서 본 마르세유 만] (The Bay of Marseille seen from L'Estaque, 1878~1885)
[에스타크에서 본 마르세유 만] (The Bay of Marseille seen from L'Estaque, 1878~1885)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된 자연 풍경. 이후 입체주의로 이어지는 세잔의 시선이 잘 드러나는 그림이다.
[생트 빅투아르 산] (Montagne Sainte-Victoire)
[생트 빅투아르 산] (Montagne Sainte-Victoire)
세잔이 평생 반복해서 그린 주제. 오르세 소장본은 그 연작 중에서도 비교적 차분하고 단단한 인상이다.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무대 위의 발레 연습] (Ballet Rehearsal on Stage, 1874)
무대 위 발레리나들의 연습 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담아낸 작품. 드가 특유의 비대칭적인 시선이 인상적이다.
[계단을 오르는 무용수들] (Dancers Climbing the Stairs, 1886~1890)
[계단을 오르는 무용수들] (Dancers Climbing the Stairs, 1886~1890)
무대 뒤 계단을 오르는 발레리나들의 일상적인 순간을 포착했다. 화려한 무대보다 이런 뒷모습이 더 드가답다는 생각이 드는 그림이다.
[푸른 옷을 입은 발레리나들] (Danseuses bleues, 1897~1899)
[푸른 옷을 입은 발레리나들] (Danseuses bleues, 1897~1899)
드가 발레 연작 중에서도 색감이 특히 아름다운 작품. 파란 튀튀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구성이 강렬하다.
[다림질하는 여인들] (Women Ironing, 1884~1886)
[다림질하는 여인들] (Women Ironing, 1884~1886)
발레리나 그림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고된 노동 중의 여인들을 꾸밈없이 담아낸 시선이 묵직하게 남는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해바라기, 프티 쥬느빌리에의 정원] (Sunflowers, Garden at Petit Gennevilliers, 1885)
[해바라기, 프티 쥬느빌리에의 정원] (Sunflowers, Garden at Petit Gennevilliers, 1885)
카유보트의 도시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정원의 해바라기를 담은 작품. 가까이서 올려다보는 구도가 독특하다.
카미유 피사로 (Camille Pissarro)
[에라니의 들판에 있는 여인] (Woman in the Meadow, Eragny, 1887)
[에라니의 들판에 있는 여인] (Woman in the Meadow, Eragny, 1887)